6.4 생장 억제 호르몬 – ABA와 에틸렌의 조용한 통제
– 나무의 '멈춤 신호'는 어디에서 오는가?
수목생장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라 하면 대부분은 옥신, 지베렐린, 시토키닌처럼 성장을 촉진하는 물질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식물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성장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멈추는 것’입니다.
고온, 가뭄, 상처, 병해, 계절 변화 등 다양한 위협 속에서 식물이 생장을 조절하고, 잎을 떨어뜨리고, 휴면에 들어가는 데에는 바로 ABA(Abscisic Acid, 앱시스산)와 에틸렌(Ethylene)이라는 생장 억제 호르몬의 섬세한 제어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1. ABA (Abscisic Acid) – 휴면을 유도하는 억제자
아브시스산(Abscisic Acid, ABA)은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고 휴면, 낙엽, 기공 폐쇄 등을 유도하는 대표적인 생장억제 호르몬입니다.
하지만 이 호르몬은 처음부터 하나의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 아닙니다.
두 명의 과학자가 서로 다른 실험을 통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발견한 후, 나중에 동일한 물질임이 밝혀져 ‘ABA’로 통합된 것입니다.
1) 영국 – 도르민(Dormin)의 발견 (1963)
영국 식물생리학자 P. F. Wareing(웨어링)은 노르웨이단풍(Norway maple)의 낙엽잎을 이용한 연구에서 줄기 생장을 억제하고 휴면을 유도하는 물질을 추출했습니다.
이 물질은 새순(정단 생장점)의 생장을 억제하고, 겨울눈을 휴면 상태로 유지시키는 작용을 보여 '도르민(Dormin)'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 Dormant(휴면)의 어근에서 따온 명칭
2) 미국 – 아브시신(Abscisin)의 발견 (1963)
같은 시기, 미국의 식물학자 F. T. Addicott(애디콧)은 목화(Gossypium)의 잎에서 낙엽을 촉진하는 물질을 분리하였습니다.
그는 이 물질이 엽병기저부의 세포분열을 유도하여 잎이 떨어지는(탈리) 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이를 ‘아브시신 I(abscisin I)’이라 명명했습니다.→ Abscission(탈리)의 어근에서 따온 명칭
(1) ABA의 생리적 효과
- 기공 폐쇄 유도 → 수분 손실 억제
- 휴면 유도 → 겨울철 생장 멈춤
- 종자 발아 억제 → 조건 불충분 시 발아 방지
- 스트레스 반응 촉진 → 고온, 건조, 염분 등에 대한 방어
① 휴면 유도 – 생장을 멈추는 내면의 스위치
아브시스산은 계절 변화, 일조량 감소, 온도 하강 등의 환경 조건을 인식해식물이 생장을 중단하고 휴면 상태로 진입하도록 유도합니다.
- 형성층 세포의 분열을 억제하고,
- 영양분 저장을 강화하며,
- 지상부 생장을 정지시키는 작용을 통해 수목이 겨울을 준비하는 생리적 전환점을 만듭니다.
낙엽활엽수의 겨울눈(休眠芽, dormancy bud)은 ABA 농도가 상승하면서 형성됨
② 탈리현상 촉진 – 잎과 열매의 '이별'을 설계하다
ABA는 에틸렌과 함께 작용하여 잎, 과일, 꽃 등 식물 기관이 스스로 떨어지도록 유도합니다.
이를 탈리(abscission)라 하며, 식물이 스스로 필요 없는 부위를 분리하는 생리 현상입니다.
- 잎자루 기저부(탈리층)에서 세포분열과 효소 활성 증가
- 세포벽 분해효소 활성화 → 조직 이완 → 낙엽·낙과 발생
- 에틸렌이 직접적 유도자라면, ABA는 촉진 및 보조 역할
가을철 낙엽 직전, 잎에서 ABA 농도가 급상승하며 노화·탈리 신호를 증폭시킴
③ 스트레스 감지 – 가뭄과 고온에서 살아남는 전략
식물은 가뭄, 고온, 염분, 병해충 등 외부 스트레스를 받을 때 ABA를 빠르게 생성하여 생리 반응을 조절합니다.
대표 작용: 기공 폐쇄
- 잎의 기공이 닫히면 증산작용이 억제되고 → 수분 손실 최소화 + 세포 수축 방지
또한 ABA는 스트레스에 노출된 조직에 폴리페놀, 리그닌, 방어 단백질 합성을 유도해 내부 보호막을 구축하는 데에도 관여합니다.
수목이 극심한 가뭄 시 잎을 말고 기공을 닫는 현상은 ABA 증가에 따른 결과
④ 모체 내의 종자 발아 억제 – 시기상조 발아를 막는 방패
식물의 종자는 성숙한 상태에서도 바로 발아하지 않고 일정 기간 휴면에 들어갑니다.
이는 ABA가 종자 내에 존재하면서 발아 관련 효소를 억제하기 때문입니다.
- ABA는 **전분 → 당 분해 효소(amylase)**의 생성을 억제 → 에너지원 생성 차단 → 발아 중단
또한 모체 식물에서 전달된 ABA는 종자가 떨어지기 전까지 조기 발아(모체 내 발아)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벼나 보리 등에서 고온기 조기 발아(싹트기)를 방지하는 데 ABA 수치가 관여 → ABA 결핍 돌연변이 식물은 조기 발아율이 높음
(2) 생성 위치
- 주로 노화 중인 잎, 뿌리, 종자 등
- 스트레스 상황에서 합성이 증가
(3) 작용 메커니즘
- 수분 부족 시 ABA가 잎의 기공을 닫게 하여 증산을 줄임
- 낮은 온도나 광 조건 부족 시, 형성층 분열을 억제하고 휴면 상태로 진입 유도
- 종자 발아 억제를 통해 시기상조 발아 방지 → 생존 전략
ABA는 식물이 ‘지금 자라면 안 된다’고 판단할 때 작동하는 억제 신호 전달자입니다.
2. 에틸렌 (Ethylene) – 노화와 탈리의 지휘자
(1) 에틸렌의 주요 기능
- 낙엽과 낙과 유도 (탈리)
- 잎과 과실의 노화 촉진 (Senescence)
- 상처 반응 유도 → 방어벽 형성
- 줄기 굴절 및 비정상 생장 유도
- 과실의 성숙 촉진
(2) 생성 위치
- 거의 모든 식물 세포에서 생성 가능
- 특히 성숙한 과일, 탈리 예정 잎, 상처 조직 등에서 활발
(3) 작용 특성
- 유일한 기체 상태의 식물 호르몬
- 주변 세포에도 빠르게 확산되며 작용
- 타 호르몬과는 달리 농도가 높아질수록 억제 작용 증가
(4) 생리학적 효과
상황 | 에틸렌의 작용 |
가을철 | 낙엽 유도, 노화 촉진 |
과실 숙성 | 호흡량 증가, 색소 변화, 조직 연화 |
가지 절단 | 상처 조직 내 에틸렌 상승 → 리그닌화 촉진 |
스트레스 | 뿌리 생장 억제, 줄기 굴절 반응 유도 |
3. 생장 억제 호르몬과 촉진 호르몬의 상호작용
생장 억제 호르몬은 항상 독자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장 촉진 호르몬과 정교한 균형과 대립을 이루며 작용합니다.
생리 현상 | 관련 호르몬 균형 |
종자 발아 | ABA ⬇ vs GA(지베렐린) ⬆ |
기공 개폐 | ABA ⬆ → 폐쇄 / ABA ⬇ → 개방 |
잎의 유지 vs 탈리 | 옥신 ⬆ → 유지 / 에틸렌 ⬆ → 낙엽 유도 |
조직 생장 vs 멈춤 | 시토키닌/옥신 ⬆ vs ABA/에틸렌 ⬆ |
4. 수목 관리 실무에서의 활용
(1) 이식 전 휴면 유도
- 가을철 이식 전 ABA 농도 상승기 이용
→ 형성층 활동 억제 → 수분 손실 감소 → 활착 안정성 증가
(2) 조기 낙엽 판단
- 병해나 수분 부족으로 조기 낙엽이 발생할 경우
→ 에틸렌 농도 급상승이 원인일 수 있음
→ 수분 조절 + 에틸렌 저해제(AVG 등) 사용으로 억제 가능
(3) 과수관리
- 과실 낙과 조절: 에틸렌 유도제(NAA, 에테폰 등) 또는 저해제 활용
- 숙기 조절: 감귤, 사과 등에서 수확 전 숙기 예측에 사용
- 창고 저장성 유지: 에틸렌 농도 차단 → 품질 유지
(4) 고온 스트레스 대응
- 가뭄이나 폭염 시 ABA 처리 → 기공 조기 폐쇄 유도 → 수분 손실 최소화, 광합성 손상 방지
5. 나무도 '멈추는 힘'이 있어야 산다
성장만이 생존이 아닙니다.
멈출 줄 아는 생리 반응, 위기에서 생장을 멈추고 자신을 지키는 전략이 있어야 수목은 계절을 견디고, 스트레스를 이기며 살아남습니다.
ABA와 에틸렌은 말 없는 경고등처럼 나무가 언제 자라고, 언제 멈춰야 할지를 알려주는 내부 신호 시스템입니다.
호르몬 | 주요 작용 | 실무 활용 |
ABA | 기공 폐쇄, 휴면 유도, 스트레스 대응 | 이식 안정, 가뭄 대응, 발아 조절 |
에틸렌 | 노화, 낙엽, 숙성, 상처 반응 | 낙과 유도, 숙기 조절, 병해 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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